어둠이 걷히는 시각에 새벽종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집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울림이 잔잔한 파동으로 멀리 퍼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머리에 이고 알곡을 거두는 심경으로 《표현》 제76호를 발간합니다. 귀한 원고를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상허 이태준 선생은 “과꽃은 가을이 올 때 피고 국화는 가을이 갈 때 이운다.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되 다 마찬가지 가을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글은 첫 문장에서 감동이 오고 어떤 글은 모두 읽고 난 후에 감동이 있습니다. 때로는 오랜 전에 그저 밋밋하게 읽었던 글이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보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더욱 향기로워지는 국화의 향기와 찬비를 맞고 돌아오던 날 우산에 붙어 따라 온 누른 잎이 정겨운 계절입니다.
당대 시인 설직(薛稷, 618~907)의 <추조람경秋朝覽鏡>입니다.
客心驚落木(객심경락목) 나그네 마음 지는 잎에 놀라
夜坐聽秋風(야좌청추풍) 밤 새워 앉은 채로 가을 바람 소리 듣네
朝日看容髮(조일간용발) 아침 되어 얼굴 모습 비추어보니
生涯在鏡中(생애재경중) 생애가 바로 그 거울 속에 있네
《표현》은 대한민국 문인들의 얼굴입니다. 가을호에 담긴 열정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이 될 것입니다. 어둠이 걷히고 동쪽 하늘이 붉어지면 온 세상이 밝아지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여전히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