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61

시문을 읽으면서 용심用心을 이해하고자

온갖 꽃들이 피고 또 피고 있습니다. 지난봄을 알리던 꽃이 진 자리에는 조그맣게 열매가 달렸습니다. 올여름 눈 부신 햇살을 받으면서 실한 과실이 될 것들입니다. 귀한 원고를 주신 작가님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표현》 제83호를 발간합니다. 진晋나라 육기(陸機 : 261~303)는 에서 “나는 항상 시문을 읽으면서 작가의 용심用心을 깊이 이해하고자‘ 했다 합니다. 용심은 글을 씀에 있어 마음의 작용이니 곧 문장을 짓는 원리라고 하겠습니다. 중국의 가장 긴 장편의 문학이론서로써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유협(劉勰 : 466~520)이 쓴 에서 ‘문학의 근원이 도(明道)에 있다.’ 했습니다. 풍부하고 다채롭게 보이는 객관적 세계는 모두 도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자연계는 도의 미적 표현(道之文)이니 ..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봄볕에 묵은 책장을 넘기다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서둘러 창문을 열었습니다. 임인년壬寅年 봄에 홍매紅梅의 화려한 향기와 함께 《표현》 제82호를 발간합니다. 출간을 기다려주시고 잊지 않고 원고를 보내주신 정성으로 새로운 바다에 또 한 척의 배를 띄웁니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 상에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관중은 제나라 환공(桓公:재위 B.C.685∼643)과 함께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고자 요동 길에 나섰는데 원정 갈 때는 봄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겨울이 되어 혹한 속에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때 관중은 ‘노마지지가용야老馬之智可用也(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늙은 말을 앞세워 그 뒤를 따름으로써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노마지지는 노마식도老馬..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몸이 청명淸明해지면 천리天理가 밝게 드러나

비가 내리면서 불어오는 바람에 한겨울이 들었습니다. 차갑고 시린 빛을 맞은 《표현》 제81호입니다. 잊지 않고 귀한 원고를 보내주신 은덕으로 신축년辛丑年 겨울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각이 되면 큰 바다를 향해 또 한 척의 배를 띄우는 심경입니다. 권근(權近,1352~1409)은 라는 글에서 “배라는 것은 고정되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것이라 어느 쪽이든 무게가 쏠리게 되면 자연히 기울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배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하고 또 배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내가 중심을 잡아 주면 배는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풍랑이 거세더라도 배가 뒤집힐 염려가 없게 되지요. 풍랑이 아무리 거세다고 한들 어찌 내 마음의 평정까지 어지럽힐 수 있겠소?”라고 하여 삶의 ..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

매미의 울음소리가 맑고 푸른 하늘을 가르는 듯 직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표현》 제80호를 발간합니다. 격려의 말씀과 함께 귀한 원고를 주신 문우님 덕으로 풍성한 가을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땅속에서 살다가 세상에 나와 짧은 생을 마감하는 매미는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이라는 오덕五德을 지닌 동물입니다. 머리 모양이 선비가 쓰는 관冠을 닮았으니 문덕文德을 갖추었으며 나무의 수액만 먹고 사니 청덕淸德을 지녔고 곡식을 축내지 않으니 염치를 아는 겸덕廉德과 살 집을 따로 짓지 않는 검덕儉德 그리고 때를 보아 떠날 줄을 아니 신덕信德이 그것입니다. 조선시대 임금이 정사를 볼 때 쓴 관모를 익선관翼善冠은 날개 익翼과 매미 선蟬을 써서 익선관翼蟬冠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매미의 오덕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성큼 다가온 여름날에

산과 들에 꽃이 피고 또 피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계절에 《표현》 제79호를 발간합니다. 마음을 울리는 말씀들과 함께 귀한 원고를 주신 문단 선후배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잎이 무성해지는 나무들을 보면서 좋은 글로써 더욱 풍성해지는 잡지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푸른 옷 바꿔 입을 때/ 흔들어 봐도 안 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넣고 걷다 보면’ 황동규 시인의 에서처럼 '알맞게 사람 냄새'가 풍기는 '조금 덜 슴슴한' 곳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남송南宋 시인 범성대(范成大, 1126-1193)의 입니다. 窗間梅熟落蒂(창간매숙낙체) 창가에 매실 익어 열매 떨어지고 牆下筍成出林(장하순성출림) 담 아래 죽순 돋아 숲을 이루네 連雨不知春去(연우불지춘거) 연일 내리는 비에 봄 가..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봄이 활짝 피었습니다

바람은 아직 찬데 허리 숙여 굽어보니 어느새 흙을 밀치고 돋은 새싹들이 눈부십니다. 신축년辛丑年 새해를 맞이하여 연둣빛 새잎들과 눈을 맞추면서 《표현》 제78호를 발간합니다. 계속되는 코로나 상황에도 귀한 원고를 주신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병화 시인의 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땅속에서 땅 위에서/공중에서/생명을 만드는 쉬임없는 작업/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다시 하는 말이/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이렇게 봄이 왔으니 그분의 말씀처럼 항상 봄처럼 꿈을 지니고 항상 봄처럼 새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옷깃을 여미는데 어디선가 매화향이 창을 타고 들어옵니다. 청대淸代 이방응(李方膺, 1698~1754)의 입니다. 揮毫落紙墨..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눈이 올 것 같은 해질녘인데

이렇게 겨울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으나 단풍 구경 한 번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좌우를 살피면서 조심조심하다 보니 어느새 ‘눈이 올 것 같은 해질녘’이 되었습니다. 만날 수 없음에 그리움만 쌓이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표현》 제77호를 발간합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귀한 원고를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은 하늘입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더 풍성한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펜을 고쳐 잡아봅니다. 법정은 겨울 채비를 하면서 ‘기질적으로 미적지근한 날씨보다는 살갗이 얼얼한 쌀쌀한 날씨가 좋다. 내 삶에 긴장감이 돌기 때문이다. 팽팽하게 긴장감이 돌아야 산중에서 사는 맛이 난다.’라고 했습니다. 당唐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입니다. 綠蟻..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생애재경중生涯在鏡中

어둠이 걷히는 시각에 새벽종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집니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울림이 잔잔한 파동으로 멀리 퍼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머리에 이고 알곡을 거두는 심경으로 《표현》 제76호를 발간합니다. 귀한 원고를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상허 이태준 선생은 “과꽃은 가을이 올 때 피고 국화는 가을이 갈 때 이운다. 피고 지는 데는 선후가 있되 다 마찬가지 가을꽃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글은 첫 문장에서 감동이 오고 어떤 글은 모두 읽고 난 후에 감동이 있습니다. 때로는 오랜 전에 그저 밋밋하게 읽었던 글이 생각이 나서 다시 꺼내보고 감탄하기도 합니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더욱 향기로워지는 국화의 향기와 찬비를 맞고 돌아오던 날..

카테고리 없음 2022.07.29

《표현》은 표현이다

초록의 눈부심으로 하늘빛이 시립니다. 숨을 쉴 수 있다는 자유가 유난히도 그리운 계절에 《표현》 제75호 여름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생명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생각하니 이번호에 담은 모든 글들이 더욱 윤이 납니다. 《表現》은 1979년 12월 31일에 시, 소설, 수필, 문학, 평론을 수용한 반년 간 무크지 형태의 종합지로 창간호를 발행했습니다. 조선 기록문화의 중심지로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전주에서 《表現》은 반세기를 향해 묵묵히 걸으면서 한국문단의 다양한 목소리를 표현함으로써 이제 역사가 되었습니다. ‘문예지는 시대를 읽는 표상’입니다. 《表現》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에서 출판된 ‘완판본’과 전라감영에서 발간한 ‘완영본’ 그리고 민간에서 발간한 ‘방각본’의 가치를 계승할 것입니다. 청대의 ..

표현 2020.09.12

가을 아침에 거울을 보다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이 한창입니다. 붉다 못해 주황빛으로 물들어 입구에서부터 도솔암까지 이어지는데 오랜만에 걸어보는 선운사 숲길에서 자꾸만 멈춰지는 것은 좌우로 넓게 펼쳐진 융단 같은 장관 때문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에는 큰 나무들이 가로수인데 나무와 나무사이를 휘장으로 이어서 고창문인들이 시화전을 열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시인들의 작품 앞에서 잠시 쉬면서 한 자 한 자를 소리 내어 읽어보았습니다. 산바람도 같은 신선함이 가슴 가득 밀려들어왔습니다. 산길에서 한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 아래 꽃무릇 한 송이가 기둥과 15도쯤 기울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본래 기운 채 핀 것인지 아니면 지난 태풍에 그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집단으로 피어 군락을 형성한 까닭에 존재가치를 느끼게 하..

표현 202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