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서둘러 창문을 열었습니다. 임인년壬寅年 봄에 홍매紅梅의 화려한 향기와 함께 《표현》 제82호를 발간합니다. 출간을 기다려주시고 잊지 않고 원고를 보내주신 정성으로 새로운 바다에 또 한 척의 배를 띄웁니다.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 상에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관중은 제나라 환공(桓公:재위 B.C.685∼643)과 함께 고죽국孤竹國을 정벌하고자 요동 길에 나섰는데 원정 갈 때는 봄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겨울이 되어 혹한 속에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때 관중은 ‘노마지지가용야老馬之智可用也(늙은 말의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하면서 늙은 말을 앞세워 그 뒤를 따름으로써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노마지지는 노마식도老馬識道 또는 노마지도老馬知道와 함께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조선 중기 학자 신흠(申欽, 1566~1628)의 시 <봄빛에 이끌려>입니다.
춘우중소지(春雨中宵至) 한밤에 조용히 내린 봄비 따라
산화차제개(山花次第開) 산꽃들이 차례로 피어난다
소광양가완(韶光良可翫) 아름다운 봄꽃과 노닐다 보니
세고막상최(世故莫相催) 모든 일 재촉할 것 아니구나
용졸요존도(用拙聊存道) 쓰임새 없음에 애오라지 도를 지키고
전생불원재(全生不願材) 세상이 손짓하지 않아도 생을 즐기리
형비종적막(蘅扉從寂寞) 사립문 여닫는 일 없어 한적한 날에
승흥독등대(乘興獨登臺) 홀로 봄빛에 이끌려 누대에 오른다
비가 내린 후 볕이 환하여 세상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묵은 책장을 넘기면서 좋은 시 한 편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