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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적인 전쟁 식물적인 전쟁

민들레 시인 조미애 2007. 6. 13. 09:33
 



동물적인 전쟁 식물적인 전쟁

                                                                      

 

  우리나라 6.25이후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아침 몇 장의 사진이 메일로 전해져 왔다. 가끔 보아오던 흑백사진이 아니라 칼라로 처리된 것이, 우리에게도 전쟁이란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 크게 실감나게 한다.

  몇 장의 사진을 통해 전쟁의 상흔을 바라보면서, 나는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결코 낯설지가 않음에 조금씩 놀라고 있다. 오히려 홑겹의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무심한 얼굴로 전장 속에 서 있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들이 어릴 적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동물적인 전쟁의 결과이다.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해 총칼로 무장한 사람들의 전쟁과 밀림 동물들의 생태 환경 그리고, 나무뿌리들의 영토 확장과 식물들의 경쟁 모두가 매한가지 일상처럼 보이는 것일까? 인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피로 얼룩진 전쟁의 역사서를 읽는 것만 같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생명이라는 것이 정녕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조차 의문이다. 인간 생명의 존귀함을 너무도 하찮게 생각하는 오늘의 현실에 그저 마음이 무거워질 뿐이다.

  바다 속에서 서로 먹고 먹히는 물고기들의 생존이나, 정글에서 싸워 잡아먹고 먹히는 동물들의 천적관계에 대하여, 생태계의 평형을 유지하는 과정이라고 학습하면서도 정작 인간들이 지극히 사소한 감정이나 자국의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전쟁에 대하여는 구구하게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만큼 이기적인 동물이 우주 어느 곳에 또 있을까 싶다. 

  어느새 길어진 햇살이 아파트 베란다를 깊숙하게 찾아 들어온다. 유리창을 통해 볼을 건드리는 빛의 온도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시루항아리에 심은 접란의 잎도 누릇누릇하여 왠지 생기를 잃어 보인다. 오래도록 긴 꽃대를 흔들면서 작고 귀여운 하얀 꽃을 피워내던 것이다. 며칠 돌보지 못한 사이에, 틈을 비집고 자리를 잡은 괭이밥이 오히려 싱싱하다. 남의 집에 숨어들어 온 놈이, 주인이 잠시 무심한 사이에 뿌리를 내려버린 것이다. 그런데 한 분에 난 두 식물이 그리 흉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숲을 키운 듯하여 그냥 그렇게 두고 보기로 했다.


흙으로 빚어낸 분 안에서/동설란의 새 순과/이름 모를 어린 싹 하나가/싸우고 있다/긴 겨울 튼실한 알뿌리 덕에/매운 추위 다 이겨낸 생명이라서/힘이라면 누구와도 견줄 만하나/이름조차 알 수 없는 풀씨 역시/만만한 것은 아니다/아직 이른 봄날 오후/길게 들어 온 햇살을/서로 탐내고 가두어 가면서/좁은 화분 안에 뿌리를 뻗어/땅을 훔쳐 넓히는/순들의 전쟁                                       - <순들의 전쟁> -


  나의 첫 시집『풀대님으로 오신 당신』에 발문을 주신 이흥우 시인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언젠가 본 풍신수길(豊臣秀吉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특이한 한 수 의 단가(短歌:和歌)생각이 났다. ‘깊은 바다 속에서도 전쟁이 있다. 서로 죽이고 죽는’ 그것은 깊은 바다 속에서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물고기들의 생태를 매우 주관적으로 읊은 내용이었다. 풍신수길은 미천한 농부로 태어나 일본의 전국시대를 싸움과 싸움으로 살고 겪으며 무장으로 마침내 일본 정치의 제1인자로까지 올라 간 인물이었다. 임진왜란은 그의 전국시대적인 생리가 매우 비정상적으로 돌출한 대 실패작이었다. 바다 속의 생태를 그렇게 읊은 그의 단가에는, 어쩔 수 없는 그의 전국시대를 산 숙명적인 생리가 반영되었다는 생각을 나는 했다. 바닷물고기의 상처에서 나는 비린내(혹은 동물적인 살의殺意)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시에서 노래하는 것은 동물적인 살의가 아니라 식물적인 생존경쟁의 영위이다. 버젓한 동설란의 새 순과 이름 모를 풀싹이 그 분(세계)안에서 1:1의 평등한 자격을 가지고 영토 확장의 전쟁을 한다. 전쟁은 전쟁이지만 거기서 발산되는 것은 생선 같은 피의 비린내가 아니라, 산뜻하고 상긋한 풀내이다.

  싸움은 싸움, 전쟁은 전쟁이지만, 그것은 상호절멸의 전쟁이 아니다. 하나의 지구 위에서 서로 생존경쟁을 벌이면서도, 아직은 각각 상호공존의 환경적, 생태적 밸런스를 유지하는, 어딘가 미소를 머금게 하는 전쟁이다. 그것을 평화라고 하기에는 더욱 동적이고 그것을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더욱 정적이다. 그런 동과 정, 그런 평화와 그런 전쟁이 함께 깃들여 산다.”

  춘추시대 동성同性의 형제국 괵나라와 우나라 옆에 대국 진나라가 있었다. 진은 괵나라를 치고자 우나라에 많은 선물을 보내면서 길을 내어 달라고 요구했다. 어리석은 우공은 진기한 보물에 현혹되어 흔쾌히 허락을 했다. 이때 충신 궁지기宮之奇가 간곡하게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망하면 이가 시리다)의 예를 들어 이를 말렸지만, 우공은 궁지기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진의 대군은 우공이 빌려준 길을 따라 괵나라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쳐서 멸망시키고야 말았던 것이다.

  동물적인 전쟁은 어느 경우에라도 이미 비릿한 냄새가 난다. 더구나 그것이 인간의 극대화된 이기심과 자국의 이권을 위해 이런저런 트집을 끌어내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2003년 올해는 내내 이라크전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자꾸만 순망치한의 이야기를 떠 올렸다.

  할 수만 있다면 문화예술을 통해서 이 땅의 모든 동물적인 전쟁을 식물적인 전쟁으로 환원시켜야 할 것이지만, 어느 경우에라도 우리가 순망치한의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