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야희우春夜喜雨
曺 米 愛
잠시 바라다보지 못한 사이에 매화가 꽃눈을 열었다. 지붕을 타고 기는 듯 휘어진 가지에서는 붉은 빛을 연하게 돋우면서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드문드문 꼭 다문 것들마저 오히려 더 귀엽고 앙증스러워 절로 웃음이 난다. 마치 실눈을 뜨고서 이미 환하게 봄이 열린 세상을 엿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구불구불 시골 가는 길에는 여기저기 하얗게 핀 꽃이 행여 배꽃일까 돌아보게 할 정도로 날이 풀렸다. 눈길을 주지 않아도 어느새 턱밑까지 다가 온 아지랑이 자락이 하늘하늘 나리는 여인의 치맛자락인 듯 하다.
자연처럼 그렇게 모든 일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악을 쓰고 멱살을 잡고 욕을 해대면서 치고받고 하는 모습을 인간답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인데, 우리는 그러한 모습을 너무도 자주 본다. 난장판이 된 의회와 날마다 수천수만의 인파가 모인 광화문 거리는 대한민국의 슬픔이다. 식민 통치를 벗어나 해방 이후 혼란스러웠을 때나 80년대까지는 오히려 어지러운 정국이 자연스럽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성숙한 정치문화가 먼 나라의 이야기라는 말인지…….개탄스러울 뿐이다.
요즈음 많이 듣는 단어 중에는 ‘여론’이 있다. 여론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혁명 직전 재무장관으로 있던 J.네케르였다. 실제의 여론형성은 밑에서 위로 축차수렴(逐次收斂)해 가는 개인적인 토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몇 개의 중심으로부터 방사되는 주도적 의견이 개별의 성원을 조직화하여 그 동조를 얻어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여론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성원 전원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제시되는 각종 의견 중에서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정되는 의견으로, 여기에서 의견이란 각종 사회적 문제나 정책에 대한 개개인의 견해나 의향을 언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는데, 어쩌면 여론이라는 것이 하룻밤 새 눈에 뜨이게 피어나는 매화의 꽃잎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바르게 보고 바르게 들을 수 있어야 할 터인데…….제대로 보고 듣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으니 이를 어쩌나!
메조소프라노의 부드러움이나 바리톤의 안정된 목소리로 봄의 가곡을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좋은 날처럼, 그렇게 우리나라 정치문화도 아름다워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즐겁게 할 수 있는 날이 왔다고 생각했는데…….봄은 왔으나 아직도 우리에게는 봄이 오지 않았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杜甫/712-770)는 그의 시 춘야희우(春夜喜雨)에서,‘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野經雲俱黑 江船火獨明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호우지시절 당춘내발생 수풍잠입야 윤물세무성 야경운구흑 강선화독명 효간홍습처 화중금관성)이라 하여, ‘좋은 비는 그 내릴 때를 알고 있나니, 봄이 되면 내려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구나. 비는 바람 따라 살며시 밤에 내려, 소리 없이 사물을 모두 적시네. 들길도 구름도 모두가 캄캄한 밤, 강 위에 떠 있는 고기잡이 배 불빛만이 밝게 빛나는구나. 날 밝으면 붉게 젖어 보이는 곳은, 아마도 비에 젖은 금관성의 꽃이리.라고 봄밤에 소리 없이 내린 단비를 읊고 있다.
두보는 주로 안사의 난 때 고통 받는 백성들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겼다. 그러기에 그의 시에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시는 전란이나 기근의 좌절을 보내고 난 후 그의 말년에 비교적 평안한 시절을 보내던 청뚜에서 지은 작품이다. 봄을 맞아 만물이 소생함을 통하여 서정을 나타냈으며, 어두운 현실적 감정 그리고 내일의 밝은 희망을 대조적 이미지로써 표현하고 있다. 전쟁 중에도 계절의 질서는 잊지 않고 찾아와 반갑고 기쁜 시인의 심정과 함께, 좋은 시절의 비는 만물을 생성하게 할 뿐 아니라, 고단한 자신의 심정마저 달래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밤에는 우리에게도 소리 없이 호우(好雨)가 내려 만물을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나 저네나 하면서 일기예보에서 비가 오겠다고 하는데, 오는 비가 제발 호우이기를 바란다.
'군자오불학자오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자녀양육과 교육은 나라에서 책임져야 (0) | 2007.04.12 |
|---|---|
| 해마다 찾아오는 내 봄의 초상화 (0) | 2007.03.29 |
| 저소득층 자녀에게 열린 美 사립대학 (0) | 2007.03.16 |
| 神이 보는 세상 (0) | 2007.01.12 |
| 군자오치 (0) | 2007.01.05 |